사회복지학부 전체 사이트맵

자료실

모두가 함께 하는 세상, 모두가 꿈꾸는 세상

사회복지학부

자원봉사론 후기

호텔관광경영학부/20182678/서혜윤/돌틈 사이에서 역경을 이겨낸 꽃들처럼: 어려움을 극복한 나의 봉사활동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서혜윤
댓글 0건 조회 181회 작성일 20-06-26 23:44

본문

20대 청년 대부분이 봉사를 하는 이유가 자발적으로 하기보다는 목적이 있어서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학창시절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봉사를 하거나 봉사 시간을 채우지 않으면 감점을 당하는 그런 경우들이 있다. 물론 거기에 나도 포함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 것이다. 봉사를 하기전과 하고난 뒤는 확연히 생각하는데에 차이가 생긴다. 지금부터 나의 봉사이야기를 해보겠다.
2019년 12월 우한에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코로나였다. 첫 발병자로 끝날 것 같다는 생각에 안심했지만 그 예상을 깨버린 것이다. 그 뒤로 코로나는 무섭게 퍼지면서 대한민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서도 퍼지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행동이 달라졌다. 그때는 몰랐다, 이게 그렇게 무서운 것일지, 나한테 영향을 줄지도 말이다.
지금까지 들었던 교양은 평상시 전공 수업을 듣는 거와는 크게 차이점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학기에는 앉아서 수업을 듣기보단 학교 밖을 나가거나 활동적인 활동을 해보려고 생각을 하던도중 ‘자원봉사론’이라는 수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 수업을 들으면서 어떤 재밌는 추억이 생기고, 나에게 어떤 변화를 주게 도와줄지라는 생각을하면서 기분좋게 첫 발걸음을 뗐다. 하지만 코로나19로인해 한학기가 비대면으로 진행된다는 공지가 떴다. 개강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 학기를 보내기 위해 들떠있던 나는 그렇게 기분이 축쳐지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봉사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청정지역에서 산다. 이 말을 듣고 엥? 뭔말이지? 또는 자기 지역은 코로나가 안퍼졌다고 자랑하는건가?라고 생각할 수 도있다. 이 말의 의미는 나는 시골 한적한 곳에서 산다는 것이다. 시골에 산다는 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단점이 될 때도 있었다. 내 주변 지인들은 다들 봉사할 곳을 구해서 봉사를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조급한 마음이 들면서 주변 봉사할 수 있는 곳에 전화를 걸어 찾기 시작했다. 여기는 어린이집이나 노인요양병원이 많았다. 그래서 그 위주로 구하려고했지만 다들 입이라도 맞춘 듯 첫 마디가 “코로나19” 또는 “불가능할 것 같네요”, “외부인 출입금지”입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또 다른 곳은 오히려 여기는 정식으로 인증된 봉사기간이 아니니깐 다른곳에서 하라면서 화를 내시는 분도 있었으며, 6월달에 오라고 말하시는 분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거절을 몇차례당하고 난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코로나19만 아니였으면 봉사할 곳은 천지일텐데”라고 말이다. 그런생각을 하는 동시에 코로나19를 원망도 하게되었다. 내가 생각한 또 다른 방법은 여기서 할 수 없으면 목포나 광주로 봉사를 하러가는 것이였다. 물론 거기에 소비되는 시간과 비용은 적지않을테지만 나는 그 정도로 간절했다. 마지막으로 한 곳만 더 전화해보고 할곳이 없으면 주변지역(광주,목포)에서 하자는 생각을 하고 반절은 포기한 상태로 전화를 했다. 그 연결되는 통화음은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두근두근 거렸다. 그 결과 나의 간절함이 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봉사를 할 수 있다고 시간 맞춰서 나오라고 하셨다. 내가 30시간을 봉사할 수 있게 기회를 준 그 곳은 “지역아동센터”라는 곳이다. 이 곳은 영세민친구들도 있고,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과 집에 혼자 있을 친구 등 다영한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내가 처음 봉사를 시작하게 된 날짜는 5월12일이다. 봉사를 하러가는 게 어찌나 신났던지 기분이 좋았다. 힘들게 구한만큼 30시간이라는 시간이 헛되이 되지않게 열심히 해야지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봉사를 가서 처음으로 한 활동은 그 곳에 있는 책들을 엑셀 작업하는 것이었다. 나는 엑셀을 많이 해보지도 않았고, 타자도 느린데다 많은 시간이 들거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혼자서 책을 들고 왔다갔다 정리하면서 2일정도를 그렇게 같은 일을 반복했다. 내가 작업을 하는 동안 애들은 간식시간이 되면 간식을 먹고 공부를 했다. 하루 3시간씩 봉사를 하러가서 엑셀작업만 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흘러 집가는 시간도 빨리 돌아왔다. 사실 이틀동안은 어깨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애들이 간식을 먹을때면 나도 배고파져서 같이 먹고 싶었다.
5월 13일은 초여름이였다. 그래서 남자선생과 함꼐 선풍기를 씻고, 닦아서 다시 조립하였다. 그 활동을 하면서 남자선생님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작업은 했지만 나는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었다, 계속 나한테 말을 걸어주시는건 고마웠지만 내가 말을 끊는거 같아서 죄송했다. 물론 나는 먼저 다가가는 성격도 아니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5월14일 드디어 애들이랑 많이 친해졌다. 평소에는 학교 끝나고 센터에 와서 공부만 하던 애들이 내가 일을 하는 동안에 와서 관심을 보였다. 마치 자기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여기저기 왔다갔다 거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지금도 생각이 난다. 나는 지영이라는 여자아이의 공부를 돕게 되었다. 물론 문제를 다 풀고 모르는 거나 헷갈려하는 문제를 알려주는 것이다. 지영이는 부끄럼이 많은 아이였지만 반전의 매력이 있는 아이였다. 자기 의사표현은 똑부러지게 하고 자기 할 일은 잘하는 아이였다.
하루는 과학의 날을 맞이하여 과학에 관련된 작품들을 만들었다. 과학의 날은 훨씬 지났지만 코로나로 인해 센터에 못온 애들을 위해서 지금이라도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나는 돌아다니면서 애들이 못하는 부분을 도와주는 보조역할을 했다. 애들은 빨리 완성시키고 싶은 마음이 커보였다. 마음은 급해보였는데 손이 잘 따라주지 않으니깐 주변사람들한테 짜증을 냈다. 하지만 그때 나의 목표는 애들이 짜증을 낸다고 해주기보다는 끝까지 스스로 완성시키는 것이였다. 물론 내가 작품을 완성시켜줄 수 는 있지만 그렇게 된다면 애들이 참여한 과학 놀이가 아닌 나의 과학놀이가 될것이며, 애들이 늦더라도 만들기를 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요즘 어린이들은 너무 쉽게 포기하고 실증내고, 의지하는 게 익숙해져서 그렇지 않으면 하는 마음도 컸다. 우리가 완성한 작품은 “말하는 앵무새”였다. 사람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재생하면 그대로 앵무새가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완성시킨뒤 애들은 그 작은 하나에도 웃음이 끊기지 않았다. 만들기를 하면서 실수없이 빠른시간내에 완성을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문제점을 발견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지를 생각해보면서 포기하지 않고 할수 있었던 점에 뿌듯했다. 이처럼 단순히 시간떼우기 위해 억지로 했던 봉사가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베풀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