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이치료학과/171520/이채원/익숙함의 무서움, 책임감의 의미
페이지 정보

본문
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은 지 2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제출을 위한 자원봉사 30시간을 거의 다 채워갈 때쯤이었다. 마냥 어색하기만 했던 한글을 가르치러 오셨던 교사 그리고 한글을 배우러 오시는 다문화 가정 사람들과 친근해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익숙함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처음엔 어렵고 낯설어 실수를 할까 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졌다. 상대를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게 몸에 익숙해질 때였다. 자연스럽게 긴장은 풀리고 책임감도 약해졌다.
그때 나는 아침잠을 이기지 못하고 처음으로 봉사를 가지 않았다. 도착해야 할 10시를 훌쩍 넘기고 눈을 뜬 건 12시였다. 오랜만에 만끽하는 휴일의 단잠에 행복해했다. 당시에 죄책감은 없었다. 오늘은 나를 위한 휴일이야라는 자기 합리화를 했다.
그다음 주 봉사에 갔을 때 모두들 나에게 왜 저번 주에 오지 않았냐라고 물었다. 교사 분, 다문화 가정 분들 모두 나에게 아팠냐고 물었고 나를 걱정했다. 당황하며 조금 피곤했다고 했다. 그러자 다들 웃으며 이러다가 안 오는 거 아냐?라며 장난을 치기도 하였다. 어떤 분은 에이 설마라고 말했고 어떤 분은 맞장구를 쳤다. 같이 봉사활동을 하던 아이는 내가 없어서 저번 주에 손이 모자랐다며 다음부터는 빠지지 말라며 나에게 장난을 쳤다.
표정은 웃고 있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정 반대였다. 계속해서 나 자신을 욕했다. 잠깐의 행복으로 인해 누군가는 나를 걱정했다. 누군가는 바쁜 일로 인해 나를 원망했을 것이다. 나의 잠깐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켰다.
평소 책임감 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해야 할 일은 무조건 기간 전의 끝마쳤고 대충 했던 적은 없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나의 책임감이 바닥을 드러냈다. 봉사를 하면서 나에게 가장 큰 목적은 봉사 정신, 책임감이 아니라 기한 내에 30시간을 채우는 것이었다.
골의 앞에서 나는 흔들렸고 결국 골에 도달하지 못했다. 물론 기한 내에 할당량은 채웠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의 문제다. 나는 나와의 싸움에서 져버렸다. 나중에는 이미 늦었다.
그 이후 봉사를 빠진 적은 없었다. 봉사활동을 가서도 누구보다 성실하게 봉사를 했다. 매일 하던 뒷정리를 하고, 다문화 가정 분들께 정확한 표현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단어를 알려드렸다.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 분께서는 이번에 자원봉사를 하러 온 학생은 성실하다고 칭찬까지 받았다.
칭찬은 받았지만 나의 마음은 무겁다. 봉사는 나의 이득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베풀고 싶어서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나누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이득을 위해 봉사를 했다. 그 이득의 끝은 나 자신을 실망시키는 결과를 만들어 버렸다.
저지르고 난 후는 이미 늦는다. 가장 좋은 때는 고민하고 있을 때이다. 갈까 말까 고민할 때, 그때 가면 된다.
한때의 서투른 판단으로 나는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다시는 자신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나의 욕심이 아닌 남을 위한 욕심으로 봉사를 다니고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나를 기준으로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 이전글사회복지학부/20171299/이아라/애들아, 고마워 17.06.06
- 다음글사회복지학부/1615544/이지연/순수함을 찾아서 17.06.0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