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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심리학과 161529 이햇살
활동 기관: 광주영아일시보호소
활동 프로그램: 아동케어 및 세탁물 정리
좋은 아내가 될 자신이 없다.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은 더더욱 없다. 나의 아이라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이들을 싫어하는가? 물으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을 보면 하던 일도 멈추고 흐뭇하게 지켜본다.
아이들을 좋아라한다. 쇼핑센터에서 엄마 손을 붙들고 빵실한 볼을 가진 아이를 보면 눈을 떼지 못한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것과 책임지는 것 사이에는 억겁의 벽이 있다. 나는 강아지 한 마리도 키우고 싶지 않다. 인생에 절대 없는 건 절대 없다는 생각으로 지나친 극단주의는 배재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으나 그럼에도 양보할 수 없는 건 무엇인가를 책임지는 일이다. 책임지는 것은 나 하나로도 벅차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기 앞서 내가 한 번이라도 아이를 온전히 보살폈던 경험은 없다. 아이를 제대로 돌봐주는 경험은 전무하다. 그래서 이참에 수업을 빌미로 영아일시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해 보는 것이 나에게 기회겠구나 싶었다.
첫째 날 긴장되는 마음으로, 10분 일찍 갔으면 갔지 10분 늦는 짓은 하지 말자, 라는 생각으로 서둘러 준비하다보니 30분이나 일찍 도착해버렸다. 덜컥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투입되나 싶었는데, 자원봉사 담당 선생님께서 자원봉사자들의 일과는 세탁물 정리부터 시작된다고 알려주셨다. 유아들의 세탁물을 담당하시는 분은 나이대가 좀 있으신 이모님이셨는데 주로 세탁물 정리 쪽 일만 하시는 것 같았다.
첫째 날만 하더라도 무더위가 가시지 않은 늦여름 날씨였던지라, 빨래 너는 곳에 제대로 내리 쬐는 햇볕 때문에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았다. 인상을 찡그려 가며 빨랫줄에 흰 천을 널었다. 흰 천들 다음에도 천 기저귀도 널고, 내 팔뚝에도 못 미치는 아이들 상의와 하의까지 널다보니 별 것도 아닌데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월요일 오후 시간이었는데, 그날따라 봉사자가 나 밖에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다 처음이니 세탁물 담당 이모님께서 “우리 둘만 하게 돼서 학생이 더 힘들겠다, 손이 모자랄 텐데 그래도 널다 보면 또 어느 샌가 끝나겠죠?”하시며 심심치 않게 말도 걸어주셨다.
그리고 나서 자원봉사자 전용 방으로 들어와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진 후 그곳의 자원봉사자 담당 선생님께서 오셔서 기관 소개와 봉사자들이 할 일, 규칙과 조심해야 할 사항들을 전달하셨다. 특히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진이나 동영상촬영은 엄격히 금지한다고 한다.
광주영아일시보호소는 본관과 신관이 외부통로를 사이에 두고 다른 건물로 나누어져 있다. 본관에서는 신생아를 비롯해 채 6개월에 못 미치는 아이들이, 신관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있는 아이들이 있다.
그 날은 내가 본관 2층에 3~4개월 정도의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배정받았다. 들어가기 전 봉사자 전용 앞치마도 입고 손도 깨끗이 씻고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막연히 예상만 했는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발걸음 하나가 조심스러워졌다. 그 날은 정기적으로 하는 간단한 건강검진 시행일이었는데 그 때문에 본관의 모든 아이들을 한 방으로 오고가며 데려다 줘야 했다. 아이들의 키와 몸무게, 머리둘레, 가슴둘레를 재는 것을 보조하는 일이었다. 주로 체중계가 있는 방에 아이들을 품에 안고 한 명씩 옮겨 다녀야 했다. 이때는 내가 들어갔던 반에 있는 4~6개월 정도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신생아 수준의 아주 작은 덩치의 아이들도 직접 안아 들고 옮겨야 했다. 기껏해야 내 팔뚝만한 키의 아이 한 명 한 명 옮기는데 체력적으로 큰 무리는 아니었으나 내가 덜덜 떨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이를 안고 이동하는 동안 그 아이의 유일한 책임자는 나인 것 같이 느껴졌다. 1분도 안 걸리는 그 짧은 거리를 오가는 동안 아이를 품에서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특히나 2층에서 3층으로 다시 반대로 아이를 품에 안고 옮겨 다닐 때는 어깨가 굳어버릴 것처럼 두려웠다. 혹시나 내가 발을 삐끗해서 아이를 놓치게 된다면, 하는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일들이 떠올라 온 몸에 힘을 잔뜩 주었다.
종내에는 진이 빠졌다. 어깨나 가슴 부근에서 10명 넘는 아이들이 오고 간 온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첫 날은 반쯤 녹초가 되어서 기숙사로 돌아오기 바빴다. 둘째 날도, 셋째 날도 마치고 나면 기 빨리는 느낌이 드는 건 여전했다.
네 번째 방문인 저번 주에 방문했을 때에는 처음으로 신관으로 배정받아 본관에 있는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아이들을 맡게 되었다. 옹알이도 채 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다가 말도 잘 하고 걷고 뛰고 안기고 장난치는 아이들을 보니 훨씬 생기가 돌았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소통을 하는 느낌이 더 들었다.
팔을 뻗어오며 안기고 싶다는 행동을 취하는 아이 앞에서 저절로 자세가 낮춰졌고 무릎이 굽혀졌다. 내 무릎에 겨우 닿을 정도로 작은 아이가 나에게 쓱 안겨왔다. 아이의 볼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게 처음이었다. 우유크림이 든 흰 빵 같았다. 나도 모르게 가만 문대보고 싶었다.
어떤 아이는 한참 놀다 밥시간이 되기 직전에 나에게 안겨 단잠에 빠져들었다. 순식간에 잠들어서 새근새근 숨을 내쉬는 아이가 맞닿은 몸으로 느껴졌다. 이대로 눕히기만 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눕히는 과정에서 잠깐 쪼그려 앉았더니 귀신같이 알아채고 비명을 지르듯이 울기 시작했다. 지치지도 않는지 아이의 머리카락은 방금 씻은 것처럼 땀으로 촉촉이 젖었다. 내가 울고싶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자 식사를 준비하시던 선생님들 중 한 분이 오셨다.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본인에게 아이를 맡기라 하고 나에겐 장난감 정리를 부탁하셨다.
점심시간이 되자 봉사자들 한 명당 한 아이 꼴로 붙어 아이의 식사를 도와주었다.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하는데 예뻐서 어쩔 줄 모른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가 갔다. 사랑만 주어야지, 예쁜 것만 보여줘야지 하는 상투적인 말이 나한테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다른 아이의 밥그릇에 얼굴을 들이밀며 때론 봉사자들이 내미는 숟가락의 음식물을 받아먹고 있는 친구를 밀치고 뒤로 벌러덩 넘어뜨린다든지 하는 아이를 볼 때는 표정이 굳어버렸다. 만약 저 아이가 내 아이라면 나는 과연 사랑해줄 수 있을까? 하는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구나 싶어 심적으로 차분해졌다.
내 품에서 떨어지는 기척만 느껴져도 미친 듯이 우는 아이를 진땀 빼가며 달랠 때에도, 저 작은 입으로 뭐가 들어가긴 하는구나 싶게 오물거리는 아이의 앵두 같은 입술을 볼 때에도, 나는 불현듯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나의 할머니는 몸이 안 좋아지셔서 현재 병원에서 입원중이신데, 이런 할머니 생각이 밑도 끝도 없이 들었다. 집안환경 상 나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할머니 손에서 컸다. 엄마가 들으시면 안 그런 척 해도 섭섭할 소리겠지만 나는 할머니가 엄마보다 더 애틋하다. 나는 고작 몇 시간 이러고 있는데도 속으로 몇 십번이나 집 가고 싶다고 염불 외우듯 중얼거렸는데, 할머니는 나를 어떻게 그렇게 정성스레 돌봐주셨을까.
세상에 양육자보다 위대한 자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라고 쓰려다 양육자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지 싶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가서 몇 시간 있어주다 올 뿐인데도 혼이 쏙 빠지곤 하는데 하루 종일을 아이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내 생각은 저만치 뻗어나가 이곳의 아이들의 부모가 되는 사람들을 가만 생각해보기도 했다. 지금껏 나는 그들이 무책임하고, 못됐다고 생각했다. 사실 아직도 이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들도 나처럼 무서웠던 게 아닐까. 나라고 그 사람들과 다르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드라마 ‘청춘시대’에 나오는 대사처럼 나에겐 그저 그들만큼의 유혹이 없었을 뿐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문득 겸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곳의 한 아이가 눈에 밟힌다. 길고 얇은 속눈썹, 어딘가를 응시하던 새까만 눈동자, 동그랗고 작은 코, 오물조물하던 작은 입술 가만 생각하다보면 보고 싶어진다. 이런 식으로 마음이 가는데 괜찮은걸까? 하는 미묘한 두려움도 든다.
뭐 했다고 벌써 11월이다. 앞으로 이곳에서의 봉사활동 역시 이제껏 해온 것처럼 만만찮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힘듦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담담히 받아들여진다. 마치 내가 좋은 일을 하다 보니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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