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물류무역학과 / 143106 / 이다정 / 편견과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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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물류무역학과 / 143106 / 이다정 / 편견과 오만
동구 학동에 사는 내가, 멀리 북구 다문화 가정 센터에 까지 가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면 불쌍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들었으면 가족들과 떨어져 한국까지 왔을까? 우리동내에는 그런 다문화 가족이 정말 많이 사는구나’ 라는 동정심.
첫 번째 날
처음 센터에 가는 날. 10시까지 오라고 하셨지만 아홉 시 반까지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집에서 여덟 시 반에 나왔다. 교수님께서 나눠주신 자료 대로라면 전남대 근처에 있는게 분명하니 버스를 타고 전남대로 향했다.
그런데 내려서 아무리 네비게이션에 따라가도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보이지 않았다. 20분밖에 남지 않으니 너무 초조해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년전에 북구 양산동으로 이전을 했다고 알려주셨다.
부랴부랴 양산동으로 갔다. 이미 10시는 넘은 상태에서 너무나도 크고 좋게 세워져 있는 건물을 보니 아침부터 했던 고생이 너무 허무하고 짜증났다. 자원봉사 선생님께는 첫날부터 지각쟁이 이미지를 박았다.
선생님께서는 바로 유치원생이 체험학습 봉사 도우미 하는 것이 오늘의 할 일이라 알려주셨다. 아이들은 베트남 전통음식인 월남쌈 체험을 하고 각 나라의 의상 입어보기, 문화 배우기 시간을 가졌다. 옆에서 나는 그 모든 과정에 도움 주는 역할을 하였는데 자원 봉사자의 기분이 아니라 유치원 선생님의 기분이였다.
첫날이라 그런지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다. 힘들거나 지루하지도 않고 앞으로 봉사활동이 기대된다.
두번째 날
전날에 아홉 시 반까지 와줄 수 있느냐는 전화에 알겠다고 하고 갔다. 알고 보니 다문화가정 행사가 열리는 날 이였다. 많은 동네 주민들이 와서 다문화가정 학생의 공연을 보고 다문화 음식을 먹으며 편견을 좁혀나가는 의의인 것 같다. 엄마가 공연하는 동안 나는 그 학생들의 아이를 돌봐주며 내부 안내, 화장실 청소를 하였다.
계속해서 서있고 또 아이를 안고 있다 보니 몸이 많이 피로했다. 아이를 안고 공연을 보는데 우리나라 아줌마들만 흥 많고 정 많은 줄 알았더니 여기 모든 다문화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공연 진행MC가 자원봉사자 무대로 나오라고 했다. 고생한다고 박수 쳐주자고 해서 박수도 받고 노래도 했다. 보다 더 참여적으로 행사를 도아 주는 것 같아서 더 뿌듯했다.
뒷정리를 하다가 드는 생각이 ‘엄청 바빴던 하루인데 나라도 자원봉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화장실 쓰레기는 넘쳐나고 아이들은 그 바쁜 선생님들이 안고 있어야 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를 꾸준히 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나도 느끼는 날 이였다.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 을 나도 느끼는 날이었다.
세번째 날, 네번째 날
지 지난주와 지난주에는 행사가 있었던 것이고 우리가 앞으로 쭉 할 일은 아이 돌보는 역할이라 하셨다. 유아 방에 가보니 자원봉사자가 있는지 모르고 엄마가 수업 받을 동안에 아이를 돌봐주는 아빠들이 꾀 있었다.
그분들을 보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 편견은 확 깨졌다. 막말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장가 못 가니깐 외국여자 데려다가 사는 줄 알았는데 아니다. 정말 사랑해서였다.
이주 여성들이 사랑 받지 못한다고 생각은 오만 이였다. 사랑스런 아이들을 셋째 날에는 아빠들과 함께 넷째 날에는 자원봉사자들끼리 돌보았다. 덕분에 엄마들은 수업에 열중하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느낀게 정말 행복해 보였다. 비록 타지지만 친구들이 모여 함께 수업 받고 밥 먹는 모습이 영락없는 중고등학생 같았다. 어찌 보면 사랑해주는 남편에, 사랑스러운 아이도 있고, 함께 웃고 떠들 친구까지 있는 저분들은 행복함 그 자체 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내 기준과 내 잣대로 남을 불행하게 바라보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 날이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성숙해져가는 내모습이 좋다. 많은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는 자원봉사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동구 학동에 사는 내가, 멀리 북구 다문화 가정 센터에 까지 가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면 불쌍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들었으면 가족들과 떨어져 한국까지 왔을까? 우리동내에는 그런 다문화 가족이 정말 많이 사는구나’ 라는 동정심.
첫 번째 날
처음 센터에 가는 날. 10시까지 오라고 하셨지만 아홉 시 반까지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집에서 여덟 시 반에 나왔다. 교수님께서 나눠주신 자료 대로라면 전남대 근처에 있는게 분명하니 버스를 타고 전남대로 향했다.
그런데 내려서 아무리 네비게이션에 따라가도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보이지 않았다. 20분밖에 남지 않으니 너무 초조해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년전에 북구 양산동으로 이전을 했다고 알려주셨다.
부랴부랴 양산동으로 갔다. 이미 10시는 넘은 상태에서 너무나도 크고 좋게 세워져 있는 건물을 보니 아침부터 했던 고생이 너무 허무하고 짜증났다. 자원봉사 선생님께는 첫날부터 지각쟁이 이미지를 박았다.
선생님께서는 바로 유치원생이 체험학습 봉사 도우미 하는 것이 오늘의 할 일이라 알려주셨다. 아이들은 베트남 전통음식인 월남쌈 체험을 하고 각 나라의 의상 입어보기, 문화 배우기 시간을 가졌다. 옆에서 나는 그 모든 과정에 도움 주는 역할을 하였는데 자원 봉사자의 기분이 아니라 유치원 선생님의 기분이였다.
첫날이라 그런지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다. 힘들거나 지루하지도 않고 앞으로 봉사활동이 기대된다.
두번째 날
전날에 아홉 시 반까지 와줄 수 있느냐는 전화에 알겠다고 하고 갔다. 알고 보니 다문화가정 행사가 열리는 날 이였다. 많은 동네 주민들이 와서 다문화가정 학생의 공연을 보고 다문화 음식을 먹으며 편견을 좁혀나가는 의의인 것 같다. 엄마가 공연하는 동안 나는 그 학생들의 아이를 돌봐주며 내부 안내, 화장실 청소를 하였다.
계속해서 서있고 또 아이를 안고 있다 보니 몸이 많이 피로했다. 아이를 안고 공연을 보는데 우리나라 아줌마들만 흥 많고 정 많은 줄 알았더니 여기 모든 다문화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공연 진행MC가 자원봉사자 무대로 나오라고 했다. 고생한다고 박수 쳐주자고 해서 박수도 받고 노래도 했다. 보다 더 참여적으로 행사를 도아 주는 것 같아서 더 뿌듯했다.
뒷정리를 하다가 드는 생각이 ‘엄청 바빴던 하루인데 나라도 자원봉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화장실 쓰레기는 넘쳐나고 아이들은 그 바쁜 선생님들이 안고 있어야 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를 꾸준히 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나도 느끼는 날 이였다.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 을 나도 느끼는 날이었다.
세번째 날, 네번째 날
지 지난주와 지난주에는 행사가 있었던 것이고 우리가 앞으로 쭉 할 일은 아이 돌보는 역할이라 하셨다. 유아 방에 가보니 자원봉사자가 있는지 모르고 엄마가 수업 받을 동안에 아이를 돌봐주는 아빠들이 꾀 있었다.
그분들을 보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 편견은 확 깨졌다. 막말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장가 못 가니깐 외국여자 데려다가 사는 줄 알았는데 아니다. 정말 사랑해서였다.
이주 여성들이 사랑 받지 못한다고 생각은 오만 이였다. 사랑스런 아이들을 셋째 날에는 아빠들과 함께 넷째 날에는 자원봉사자들끼리 돌보았다. 덕분에 엄마들은 수업에 열중하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느낀게 정말 행복해 보였다. 비록 타지지만 친구들이 모여 함께 수업 받고 밥 먹는 모습이 영락없는 중고등학생 같았다. 어찌 보면 사랑해주는 남편에, 사랑스러운 아이도 있고, 함께 웃고 떠들 친구까지 있는 저분들은 행복함 그 자체 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내 기준과 내 잣대로 남을 불행하게 바라보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 날이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성숙해져가는 내모습이 좋다. 많은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는 자원봉사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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