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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론 후기

사회복지학부/151552/이가영/천사들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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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가영
댓글 0건 조회 730회 작성일 15-06-12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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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학부/151552/이가영



다섯 번째 날, 기관에 도착하니 봉사자들 중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같은 과 친구들이었지만 얼굴만 아는 사이라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저와 함께 갔던 친구와는 친분이 있었고, 덕분에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우연히 다함께 아이들 병원진료를 가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며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병원진료를 다녀온 뒤에도 같은 방에 들어가 재미있게 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덕분에 친구들과 훨씬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어 기뻤습니다.

이 날은 아픈 아이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기침을 하거나 콧물을 흘리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열이나 머리가 뜨거운 아이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창 이맘때 아이들이 자주 아프다고 말씀하시며 집에 돌아갈 때 옮을 수 있으니 손을 깨끗이 씻고 가라고 당부해주셨습니다. 기관 내에는 아이들이 많이 모여 있어 순식간에 전염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아이들이 더 많이 아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아이들에게 병을 옮기지 않게 하기 위해 봉사하는 내내 아이의 콧물이나 침을 닦은 손수건이 다른 아이들에게 닿지 않도록 하는 등 최대한 위생에 신경을 썼습니다. 아이들이 아파서인지 선생님들께서도 유독 위생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아이들의 방을 번갈아가면서 청소를 깨끗이 하고, 화장실 청소까지 부탁하셨고, 저는 화장실 청소를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화장실이라고 해서 거부감이 들었지만 안에 들어가 보니 평소에도 깨끗이 청소를 하시는지 청소를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깨끗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래도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를 했고, 아이들이 깨끗한 곳에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뿌듯했습니다.



여섯 번째 날에는 비둘기 방에 배정받았습니다. 비둘기 방에 도착하니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자고 있고, 2명만의 아이가 깨어있었습니다. 이 날은 그 중 한 아이의 돌잔치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저희가 도착하니 선생님들께서는 아이의 돌잔치 준비에 정신이 없으셨습니다. 돌잔치라고 해봤자 작은 상위에 케이크 하나와 과일 몇 가지, 과자, 떡 정도가 조촐하게 올라가 있었습니다. 돌잡이 용품 또한 간단하게 준비되어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준비를 도와 드린 뒤 돌잔치를 시작했습니다. 친구가 고깔모자를 쓴 아이를 데리고 가운데에 앉아 함께 초도 불어주었고 생일축하 노래도 부르며 다함께 아이의 돌을 축하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돌잔치를 하는 내내 태어나서 첫 생일을 부모님과 함께 맞이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가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돌잔치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지만 이 날 만큼은 부모님의 품에서 생일을 맞이하는 것이 아이에게는 훨씬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이기에 더더욱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를 진심을 담아 사랑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돌잔치가 끝난 뒤 피곤했는지 돌을 맞은 아이는 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한 봉사자는 5명이지만 아이가 한 명 뿐인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처음 겪는 상황이라 굉장히 당황스러웠지만 괜찮았습니다. 자기들끼리 놀지 않고 모두 한 아이에게 집중을 해주었고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5명이 반응을 해주었고, 다함께 아이와 놀아주었습니다. 평소 많은 아이들 속에서 집중적인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했을 아이에게 이 날은 좋은 기억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봉사활동 시간이 다 되어갈 쯤 되니 아이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고 결국 방을 나가기 10분 전에 모든 아이들이 일어나버렸습니다. 이제 막 깨어나 우는 아이들을 겨우 달래고 나니 봉사활동 시간이 끝이나 버렸습니다.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일곱 번 째날, 파랑새∙꾀꼬리 방에서 외부 강사님이 오셔 수업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노래에 맞추어 신기한 악기도 흔들어보고 신데렐라 이야기도 듣는 등 20살인 저도 빠져드는 재미있는 수업이었습니다. 수업 중 강사님께서 아이들의 이름을 자주 불러달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부모님께서 매일같이 이름을 부르며 돌보아 주시지만 기관에 있는 아이들은 수가 많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일일이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줄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아이들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중간 중간에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수업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난 뒤에도 아이가 잘 들을 수 있도록 가까이에서 아이의 이름을 꾸준하게 불러주었습니다. 아이는 본인의 이름을 아는지 이름을 부를 때마다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덕분에 아이와 더욱 친밀감을 쌓을 수 있었고, 그 뒤로도 맡은 아이들마다 꼭 자주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여덟 번째 날, 평소와 다름없이 빨래를 정리 한 뒤 가장 큰 아이들이 있는 참새∙다람쥐 방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방에 도착하니 새로 기관에 들어온 아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 보는 아이였지만 제가 방에 들어가는 순간 다가와 저에게 놀아달라고 손을 뻗었습니다. 너무나도 귀여운 모습에 데려가 자리를 잡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주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니 선생님께서 아이들 목욕을 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제껏 봐왔듯이 한명씩 차례대로 아이를 씻기는 줄 알고 있었지만 이 날은 달랐습니다. 날이 덥기 때문에 아이들의 물놀이 겸 목욕시간이었는지 13명의 아이들을 한 욕실에 들어가게 한 뒤 물놀이를 하다가 그 안에서 차례차례 씻기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단 두 분 이셨고, 아이들은 13명이었기 때문에 너무 벅차 보였지만 선생님들께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는 싸우는 아이들도 있었고, 물 때문에 우는 아이도 있었으며 위험한 장난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지켜보는 저희는 밖에서 ‘어떡해’만 연신 내뱉고 있었지만 선생님들께서는 여유롭게 역할을 나누어 아이들을 통제하면서 깨끗이 씻기셨습니다. 그 모습에 너무나도 놀랬고 선생님들이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봉사자들이 없을 때에는 항상 소수의 선생님들께서 많은 아이들을 통제하고 돌보아야한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본인의 아이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이들을 사랑을 가지고 진짜 엄마처럼 대해주는 선생님들이 더더욱 대단하게 느껴졌고 존경스러웠습니다.

다 씻은 아이들의 옷을 입혀주며 정리를 도와주던 중 저번 달에 광천터미널로 야외수업을 가던 날 제가 데리고 다녔던 아이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을 불렀더니 저에게 달려와 꼭 안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을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에게 달려와 준 아이가 너무나도 고마웠습니다. 아이를 안고 있던 중간에 다른 아이가 와 안아달라고 하자 안겨있던 아이는 저한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더더욱 저에게 안겨 있으려고 했습니다. 다른 아이에게는 미안했지만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고, 아이가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더욱 아이를 꼭 안아주었고, 아이 이름도 계속 불러주었습니다. 봉사활동 시간이 끝나 아이를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되어 내려놓으려는데 아이는 저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옷을 붙잡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짠했지만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우는 아이를 두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종종 보는 모습이지만 볼 때마다 적응할 수 없는 모습이라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홉 번째 날, 빨래 정리를 마치고 나니 기관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진료를 다녀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이미 많은 아이들을 만나보았고 병원진료도 자주 다녀왔기 때문에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제가 데리고 가야할 아이는 병아리 방에 있던 아이로 태어난 지 1달 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기 때문에 굉장히 힘이 들었습니다. 큰 아이들보다 가볍고 얌전히 있기는 했지만 너무나도 작은 아이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기 때문입니다. 긴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이가 조금만 꾸물대도 깜짝깜짝 놀래버렸습니다. 하지만 계속 안고 있다 보니 점점 얌전해지는 걸 느꼈고, 어느새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잠시 데리고 있었을 뿐이지만 집에 데려가서 키우고 싶을 정도로 너무 예쁜 이 작은 아이를 기관에 맡길 수밖에 없었을 아이의 부모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병원진료를 끝낸 뒤 아이들을 각 방에 데려다 준 뒤 비둘기 방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는 한 아이의 돌잔치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저번과 비슷하게 작은 상 위에 케이크와 과일 등이 조촐하게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생일을 맞은 아이를 맡게 되었고, 아이를 안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초를 껐습니다. 그리고 난 뒤 돌잡이도 하였는데 아이가 물건에는 관심이 없어 집으려고 하지를 않아 굉장히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청진기를 잡았고 다함께 단체사진을 찍으며 돌잔치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돌잔치를 하며 부모님과 함께하고 있지 못한 아이가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하루 내내 아이의 진짜 엄마가 된 것처럼 봉사활동에 임했습니다.



1학기 동안 30시간이라는 봉사시간을 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일주일에 두 번씩 봉사활동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초반에 너무 여유를 부린 탓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봉사활동을 가면 웃으며 반겨주는 아이들 덕분에 그 날 힘든 일이 있었더라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봉사활동이 끝난 뒤에도 품에 안겨있던 아이들이 생각났고, 아이들의 냄새가 나는 듯 한 착각도 들었습니다. 봉사활동을 안 간지 일주일 이상이 지나면 아이들이 눈에 밟혀 아른거렸습니다. 9번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동안 아이들과 보낸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광주영아일시보호소로 봉사를 갔던 이유는 그저 귀여운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이유였지만 지금은 이 작은 아이들 덕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도 해 볼 수 있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꾸준히 봉사활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험이 끝나고 방학을 하더라도 친구들과 봉사활동을 가기로 예약을 잡아놓고 마지막 봉사활동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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