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학부/151310박진아/사랑을 전달하는 한 끼 식사
페이지 정보

본문
이름 : 박진아/ 학과 : 사회복지학부/ 학번 : 151310
이번에는 매주 마다 봉사활동을 다녔던 경험에 대해서 써볼까 합니다. 아침 일찍 부터 기관에 가서 도시락을 챙기고 한분 한분의 어르신들의 댁에 직접 방문하였습니다. 매번 방문할 때마다 어르신들이 끼니는 잘 챙겨 드셨을 까, 편찮으시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앞섰습니다. 따뜻한 도시락이 혹시나 식을까 하는 걱정에 서둘러서 어르신들의 댁을 찾아 다녔습니다. 노크를 하고 도시락을 전달해 주러 온 봉사자라고 하자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한참 후에야 현관문이 열렸습니다. 어두컴컴한 방을 등지고 문 앞에는 외소한 몸의 할머니께서 저를 보고 멀뚱멀뚱 쳐다보셨습니다. 저는 다시 할머니께 “할머니 진지 안 드셨죠? 할머니 진지 가지고 왔어요!” 라고 하자 그제서야 웃으시며 저의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그 때 제 손을 잡아주셨던 할머니 손은 정말로 차가웠습니다. 날씨가 더웠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손이 너무 차가워 당황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마음 한편이 너무 아파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참동안 할머니의 손을 되려 잡아드리며 말동무가 되어드렸습니다.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그 동안 할머니께서 느끼셨을 외로움이 제게 와 닿았습니다. 다른 도시락도 돌려야 했기 때문에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그 자리를 뜰 수 밖 에 없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얼른 가라고 하셨지만 저는 할머니 먼저 들어가시라고 하였고, 뒤돌아서서 걸어가시는데 그 때 저는 절뚝절뚝 거리시는 할머니의 다리를 보았습니다. 혼자 계시면 자신의 몸마저도 잘 보살피지 않으시는데 끼니까지 거르신다고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때 저는 이 봉사를 통해서라도 어르신들께서 한 끼라도 드실 수 있다는 생각에 이보다 더 뿌듯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방문했을 때 저는 한참 동안 어르신 한 분 한 분 말벗이 되어드렸고 그 덕분에 다음 번 방문 때 저를 알아 봐 주셨습니다.
아침에 도시락 전달하는 봉사가 끝나면 다시 기관으로 돌아와서 또 다른 어르신들의 점심식사를 위해 준비를 했습니다. 상을 차리고 숟가락, 젓가락, 물을 두고 식판에 밥과 반찬을 두고 어르신들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봉사자들이 한 줄로 서서 그 식판을 전달하여 어르신들께 전달해 드렸습니다. 배가 고프셨는지 배식을 받자마자 어르신들은 바쁘게 드셨습니다. 딱 봐도 반찬이 부족해 보였기에 저는 어르신께 반찬 더 드시고 싶으시냐고 물었고, 더 달라고 하자 듬뿍 갖다 드렸고 고맙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정말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돌아다니며 빈 그릇에 묵묵히 반찬을 더 놓았습니다. 진지를 다 드신 어르신들께서는 고개를 숙이시며 정말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셨습니다.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 조금 더 숙여 “안녕히 가세요. 할아버지, 끼니 꼭 챙겨 드시고 다음에 또 봬요”라고 인사하였습니다. 이렇게 인사를 하긴 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쓸쓸한 마음을 뒤로 한 채 마무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 기관에서 도움을 받는 어르신들을 더욱 더 오래 보고 싶은 마음에 봉사를 자주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찰나에 어버이날 행사를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사회복지사 분께 제가 어버이날 행사를 하는데 참여를 해서 어르신들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 분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셨고, 어버이날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버이날이 되었고, 저는 어르신들의 어깨에 달아줄 카네이션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기관의 3층에서 행사를 하다 보니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은 대부분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오셨는데, 제 눈에 계단을 힘겹게 올라오고 계시는 나이가 많이 드신 할머니 한 분이 띄었습니다. 위험해 보였기에 깜짝 놀란 나머지 꽃을 팽개쳐 놓고 할머니께 달려갔고,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행사하는 곳까지 모셔다 드리고 카네이션도 직접 달아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눈물을 글썽거리시며 꼭 복 받을 거라면서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원 짜리 한 장을 꺼내어 저에게 주려 하셨습니다. 저는 계속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고 할머니를 좌석에 앉혀 드렸습니다. 다시 돌아와 모든 어르신들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행사 중 하나가 봉사자들끼리 어버이날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었습니다. 어르신들 앞에 일렬로 서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데 몇몇의 어르신들께서 울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도 울컥해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옆에 앉아서 안아드리고 싶었지만 노래를 부르는 도중이라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행사는 마무리가 되어가고 어르신들이 한 분 한 분 가셨습니다. 가시면서 다들 저에게 하는 말씀 대부분이 “진짜 우리 손녀딸 많이 닮았네. 우리 손녀딸은 뭐하고 있을까. 학생이 우리 손녀딸 보다 더 나은 것 같네요. 정말로 감사합니다.”였다. 실제로 자식들이 연락한 통 없다고 울면서 하소연 한 할머니도 계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아침 일찍 봉사 오느라 엄마께 연락을 못 드린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려 눈물도 났었습니다.
어르신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이 너무 먹먹했다. 봉사를 하는 내내 저는 저의 증조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제 집은 중조할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댁과 가까워서 어렸을 적부터 마치 제 집인 양 방문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만 봤던 증조할머니는 저와 항상 동네를 산책 다니시며 허리도 꼿꼿하고 듬성듬성 흰머리가 있었지만 현재는 허리도 굽으셨고, 흰머리가 대부분이며 말도 제대로 못하시고 걷지도 못하십니다. 할머니 댁 가면 심심해하는 저에게 친구가 되어주셨던 증조할머니. 저는 이 기관에서 봉사를 하면서 느낀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실제로 제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비슷하게 생긴 분도 계셔 반가워서 더 챙겨드린 것도 있었고, 대학생이 된 저는 바쁘다 보니 할머니 댁에 자주 가지 못한 것도 죄송스러움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렇게나마 어르신들의 마음을 다독거려 줄 수 있는 자원봉사자의 역할에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고령화의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 오늘 날. 이처럼 자식들의 돌봄을 받지 못해 혼자가 되어 외로움과 쓸쓸함 속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어르신들이 셀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이러한 어르신들을 자식들을 대신해서 보살펴 주고, 정을 줄 수 있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 또한 나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매주 마다 봉사활동을 다녔던 경험에 대해서 써볼까 합니다. 아침 일찍 부터 기관에 가서 도시락을 챙기고 한분 한분의 어르신들의 댁에 직접 방문하였습니다. 매번 방문할 때마다 어르신들이 끼니는 잘 챙겨 드셨을 까, 편찮으시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앞섰습니다. 따뜻한 도시락이 혹시나 식을까 하는 걱정에 서둘러서 어르신들의 댁을 찾아 다녔습니다. 노크를 하고 도시락을 전달해 주러 온 봉사자라고 하자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한참 후에야 현관문이 열렸습니다. 어두컴컴한 방을 등지고 문 앞에는 외소한 몸의 할머니께서 저를 보고 멀뚱멀뚱 쳐다보셨습니다. 저는 다시 할머니께 “할머니 진지 안 드셨죠? 할머니 진지 가지고 왔어요!” 라고 하자 그제서야 웃으시며 저의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그 때 제 손을 잡아주셨던 할머니 손은 정말로 차가웠습니다. 날씨가 더웠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손이 너무 차가워 당황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마음 한편이 너무 아파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참동안 할머니의 손을 되려 잡아드리며 말동무가 되어드렸습니다.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그 동안 할머니께서 느끼셨을 외로움이 제게 와 닿았습니다. 다른 도시락도 돌려야 했기 때문에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그 자리를 뜰 수 밖 에 없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얼른 가라고 하셨지만 저는 할머니 먼저 들어가시라고 하였고, 뒤돌아서서 걸어가시는데 그 때 저는 절뚝절뚝 거리시는 할머니의 다리를 보았습니다. 혼자 계시면 자신의 몸마저도 잘 보살피지 않으시는데 끼니까지 거르신다고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때 저는 이 봉사를 통해서라도 어르신들께서 한 끼라도 드실 수 있다는 생각에 이보다 더 뿌듯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방문했을 때 저는 한참 동안 어르신 한 분 한 분 말벗이 되어드렸고 그 덕분에 다음 번 방문 때 저를 알아 봐 주셨습니다.
아침에 도시락 전달하는 봉사가 끝나면 다시 기관으로 돌아와서 또 다른 어르신들의 점심식사를 위해 준비를 했습니다. 상을 차리고 숟가락, 젓가락, 물을 두고 식판에 밥과 반찬을 두고 어르신들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봉사자들이 한 줄로 서서 그 식판을 전달하여 어르신들께 전달해 드렸습니다. 배가 고프셨는지 배식을 받자마자 어르신들은 바쁘게 드셨습니다. 딱 봐도 반찬이 부족해 보였기에 저는 어르신께 반찬 더 드시고 싶으시냐고 물었고, 더 달라고 하자 듬뿍 갖다 드렸고 고맙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정말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돌아다니며 빈 그릇에 묵묵히 반찬을 더 놓았습니다. 진지를 다 드신 어르신들께서는 고개를 숙이시며 정말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셨습니다.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 조금 더 숙여 “안녕히 가세요. 할아버지, 끼니 꼭 챙겨 드시고 다음에 또 봬요”라고 인사하였습니다. 이렇게 인사를 하긴 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쓸쓸한 마음을 뒤로 한 채 마무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 기관에서 도움을 받는 어르신들을 더욱 더 오래 보고 싶은 마음에 봉사를 자주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찰나에 어버이날 행사를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사회복지사 분께 제가 어버이날 행사를 하는데 참여를 해서 어르신들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 분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셨고, 어버이날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버이날이 되었고, 저는 어르신들의 어깨에 달아줄 카네이션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기관의 3층에서 행사를 하다 보니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은 대부분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오셨는데, 제 눈에 계단을 힘겹게 올라오고 계시는 나이가 많이 드신 할머니 한 분이 띄었습니다. 위험해 보였기에 깜짝 놀란 나머지 꽃을 팽개쳐 놓고 할머니께 달려갔고,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행사하는 곳까지 모셔다 드리고 카네이션도 직접 달아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눈물을 글썽거리시며 꼭 복 받을 거라면서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원 짜리 한 장을 꺼내어 저에게 주려 하셨습니다. 저는 계속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고 할머니를 좌석에 앉혀 드렸습니다. 다시 돌아와 모든 어르신들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행사 중 하나가 봉사자들끼리 어버이날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었습니다. 어르신들 앞에 일렬로 서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데 몇몇의 어르신들께서 울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도 울컥해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옆에 앉아서 안아드리고 싶었지만 노래를 부르는 도중이라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행사는 마무리가 되어가고 어르신들이 한 분 한 분 가셨습니다. 가시면서 다들 저에게 하는 말씀 대부분이 “진짜 우리 손녀딸 많이 닮았네. 우리 손녀딸은 뭐하고 있을까. 학생이 우리 손녀딸 보다 더 나은 것 같네요. 정말로 감사합니다.”였다. 실제로 자식들이 연락한 통 없다고 울면서 하소연 한 할머니도 계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아침 일찍 봉사 오느라 엄마께 연락을 못 드린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려 눈물도 났었습니다.
어르신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이 너무 먹먹했다. 봉사를 하는 내내 저는 저의 증조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제 집은 중조할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댁과 가까워서 어렸을 적부터 마치 제 집인 양 방문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만 봤던 증조할머니는 저와 항상 동네를 산책 다니시며 허리도 꼿꼿하고 듬성듬성 흰머리가 있었지만 현재는 허리도 굽으셨고, 흰머리가 대부분이며 말도 제대로 못하시고 걷지도 못하십니다. 할머니 댁 가면 심심해하는 저에게 친구가 되어주셨던 증조할머니. 저는 이 기관에서 봉사를 하면서 느낀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실제로 제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비슷하게 생긴 분도 계셔 반가워서 더 챙겨드린 것도 있었고, 대학생이 된 저는 바쁘다 보니 할머니 댁에 자주 가지 못한 것도 죄송스러움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렇게나마 어르신들의 마음을 다독거려 줄 수 있는 자원봉사자의 역할에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고령화의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 오늘 날. 이처럼 자식들의 돌봄을 받지 못해 혼자가 되어 외로움과 쓸쓸함 속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어르신들이 셀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이러한 어르신들을 자식들을 대신해서 보살펴 주고, 정을 줄 수 있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 또한 나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 이전글사회복지학부/151553/신주안/미래의 밑거름 15.06.09
- 다음글사회복지학부 147264/조은숙 15.06.0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