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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론 후기

사회복지학부/151310박진아/사랑을 전달하는 한 끼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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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51310 박진아
댓글 0건 조회 634회 작성일 15-06-0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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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박진아/ 학과 : 사회복지학부/ 학번 : 151310



이번에는 매주 마다 봉사활동을 다녔던 경험에 대해서 써볼까 합니다. 아침 일찍 부터 기관에 가서 도시락을 챙기고 한분 한분의 어르신들의 댁에 직접 방문하였습니다. 매번 방문할 때마다 어르신들이 끼니는 잘 챙겨 드셨을 까, 편찮으시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앞섰습니다. 따뜻한 도시락이 혹시나 식을까 하는 걱정에 서둘러서 어르신들의 댁을 찾아 다녔습니다. 노크를 하고 도시락을 전달해 주러 온 봉사자라고 하자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한참 후에야 현관문이 열렸습니다. 어두컴컴한 방을 등지고 문 앞에는 외소한 몸의 할머니께서 저를 보고 멀뚱멀뚱 쳐다보셨습니다. 저는 다시 할머니께 “할머니 진지 안 드셨죠? 할머니 진지 가지고 왔어요!” 라고 하자 그제서야 웃으시며 저의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그 때 제 손을 잡아주셨던 할머니 손은 정말로 차가웠습니다. 날씨가 더웠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손이 너무 차가워 당황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마음 한편이 너무 아파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참동안 할머니의 손을 되려 잡아드리며 말동무가 되어드렸습니다.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그 동안 할머니께서 느끼셨을 외로움이 제게 와 닿았습니다. 다른 도시락도 돌려야 했기 때문에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그 자리를 뜰 수 밖 에 없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얼른 가라고 하셨지만 저는 할머니 먼저 들어가시라고 하였고, 뒤돌아서서 걸어가시는데 그 때 저는 절뚝절뚝 거리시는 할머니의 다리를 보았습니다. 혼자 계시면 자신의 몸마저도 잘 보살피지 않으시는데 끼니까지 거르신다고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때 저는 이 봉사를 통해서라도 어르신들께서 한 끼라도 드실 수 있다는 생각에 이보다 더 뿌듯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방문했을 때 저는 한참 동안 어르신 한 분 한 분 말벗이 되어드렸고 그 덕분에 다음 번 방문 때 저를 알아 봐 주셨습니다.

아침에 도시락 전달하는 봉사가 끝나면 다시 기관으로 돌아와서 또 다른 어르신들의 점심식사를 위해 준비를 했습니다. 상을 차리고 숟가락, 젓가락, 물을 두고 식판에 밥과 반찬을 두고 어르신들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봉사자들이 한 줄로 서서 그 식판을 전달하여 어르신들께 전달해 드렸습니다. 배가 고프셨는지 배식을 받자마자 어르신들은 바쁘게 드셨습니다. 딱 봐도 반찬이 부족해 보였기에 저는 어르신께 반찬 더 드시고 싶으시냐고 물었고, 더 달라고 하자 듬뿍 갖다 드렸고 고맙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정말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돌아다니며 빈 그릇에 묵묵히 반찬을 더 놓았습니다. 진지를 다 드신 어르신들께서는 고개를 숙이시며 정말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셨습니다.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 조금 더 숙여 “안녕히 가세요. 할아버지, 끼니 꼭 챙겨 드시고 다음에 또 봬요”라고 인사하였습니다. 이렇게 인사를 하긴 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쓸쓸한 마음을 뒤로 한 채 마무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 기관에서 도움을 받는 어르신들을 더욱 더 오래 보고 싶은 마음에 봉사를 자주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찰나에 어버이날 행사를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사회복지사 분께 제가 어버이날 행사를 하는데 참여를 해서 어르신들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 분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셨고, 어버이날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버이날이 되었고, 저는 어르신들의 어깨에 달아줄 카네이션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기관의 3층에서 행사를 하다 보니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은 대부분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오셨는데, 제 눈에 계단을 힘겹게 올라오고 계시는 나이가 많이 드신 할머니 한 분이 띄었습니다. 위험해 보였기에 깜짝 놀란 나머지 꽃을 팽개쳐 놓고 할머니께 달려갔고,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행사하는 곳까지 모셔다 드리고 카네이션도 직접 달아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눈물을 글썽거리시며 꼭 복 받을 거라면서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원 짜리 한 장을 꺼내어 저에게 주려 하셨습니다. 저는 계속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고 할머니를 좌석에 앉혀 드렸습니다. 다시 돌아와 모든 어르신들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행사 중 하나가 봉사자들끼리 어버이날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었습니다. 어르신들 앞에 일렬로 서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데 몇몇의 어르신들께서 울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도 울컥해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옆에 앉아서 안아드리고 싶었지만 노래를 부르는 도중이라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행사는 마무리가 되어가고 어르신들이 한 분 한 분 가셨습니다. 가시면서 다들 저에게 하는 말씀 대부분이 “진짜 우리 손녀딸 많이 닮았네. 우리 손녀딸은 뭐하고 있을까. 학생이 우리 손녀딸 보다 더 나은 것 같네요. 정말로 감사합니다.”였다. 실제로 자식들이 연락한 통 없다고 울면서 하소연 한 할머니도 계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아침 일찍 봉사 오느라 엄마께 연락을 못 드린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려 눈물도 났었습니다.

어르신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이 너무 먹먹했다. 봉사를 하는 내내 저는 저의 증조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제 집은 중조할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댁과 가까워서 어렸을 적부터 마치 제 집인 양 방문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만 봤던 증조할머니는 저와 항상 동네를 산책 다니시며 허리도 꼿꼿하고 듬성듬성 흰머리가 있었지만 현재는 허리도 굽으셨고, 흰머리가 대부분이며 말도 제대로 못하시고 걷지도 못하십니다. 할머니 댁 가면 심심해하는 저에게 친구가 되어주셨던 증조할머니. 저는 이 기관에서 봉사를 하면서 느낀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실제로 제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비슷하게 생긴 분도 계셔 반가워서 더 챙겨드린 것도 있었고, 대학생이 된 저는 바쁘다 보니 할머니 댁에 자주 가지 못한 것도 죄송스러움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렇게나마 어르신들의 마음을 다독거려 줄 수 있는 자원봉사자의 역할에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고령화의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 오늘 날. 이처럼 자식들의 돌봄을 받지 못해 혼자가 되어 외로움과 쓸쓸함 속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어르신들이 셀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이러한 어르신들을 자식들을 대신해서 보살펴 주고, 정을 줄 수 있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 또한 나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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