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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론 후기

사회복지학부/141351 박지현/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게 해준 웃음가득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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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현
댓글 0건 조회 821회 작성일 14-11-05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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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초등학생 때 부터 월드비젼을 통해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평소에 어린동생들을 돌보기를 좋아했고, 사람들에 대한 거리낌이 별로 없는 난, 사실 남들이 가지지 않는 특별한 질병을 가지고 있다.
"선천적 피리독신 결핍증"이라는 병인데, 몸 속에 b6성분이 부족해 약을 섭취하지 않으면, 활동이 불가하고 경기를 하기도 하며, 극한 경우에는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무서운 병이다.
서울 삼성병원에 모르는 의사선생님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입원을 자주하곤 했는데, 지금은 약만 잘 섭취하면 평상시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다고 한다.
어렸을 때, 이웃어르신 분들을 비롯해 부모님께서 많이 도와주셨는데, 이를 누군가한테 보답하고 봉사를 하고자 하는 마음에 자진해서 사회복지학부로 입학하게 되었다.
자원봉사론을 수강한 이유도 이와 다름이 없다.
사회복지에서 노인/장애인/아동복지로 나눴는데, 아이들과 시간보내는 것을 매우 좋아하여, 이번 학기에는 아동보육시설인 "신애원"에 자원봉사를 하기로 했다.
전화 후 다음 날 버스를 타고 방문하니 안내 선생님께서 처음 만난 것인데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내가 맡게 된 일은 주로 청소를 하는 것이였다.
사실 아이돌보기를 하고 싶었는데, 같은 학부의 두 친구가 금요일에 먼저 하는 바람에 한 박자 놓쳤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청소도구를 들고 여기저기 구석구석 닦는데, 7살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신발 주머니하니들고 뛰어오더니 내가 청소했던 공부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조용히 그 방을 보니 다른 봉사자가 숙제를 체크하고 질의 응답해주는 것이 보였다.먼지를 다 닦아낸 깨끗한 방에서 공부하는 친구를 보니 나도 모르게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평일에는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 따로 있어서 주말로 시간을 조정하였다.
토요일 9시반에서 12시반이나 일요일 1시에서 4시로 이야기가 되었고, 맡은 날마다 최선을 다해 봉사하였다.첫 날에
남학생이라 "신애원에 다니는 동생들이 처음보고 놀라면서 숨을까?"하는 걱정이 가득했지만, 예상 밖으로 볼 때마다 인사해주고 심지어는 4살정도 보이는 동생이 졸졸 따라오더니 "오빠 뭐해요?"라고 어찌나 또박또박 이야기하는지 매우 이쁘고 내게는 그저 내 동생 같은 느낌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오빠는 xx이네 집을 깨끗히 만들어 주려고 왔어요"라고 말하니 어딘가 달려가더니 잠시 뒤 사탕을 들고 내 손에 꼭 쥐어주었다.
그 밖에도 깜빡해서 내가 베란다에 두고 온 마른걸레를 들고와주는 아이, 뒤편 놀이터에서 남녀구분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건물과 붙어있는 옆 생활관까지 맨발로 뛰어오는 아이들, 그들의 모든 공통점은 모두 즐거워보였고, 항상 웃음 꽃이 피어있었다.
비록 내가 청소한 구역도 맨발로 뛰어다니기도 해, 다시 청소하는 일도 생긴적도 있었지만, 내 시선에는 전혀 그 동생들이 밉지가 않았다.
동생들을 볼 때, 나도 어렸을 때 '저렇게 신나게 뛰어다닐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난 내가 청소한 구역을 동생들이 지나다니며 공부하고 책읽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굉장히 만족되었다.
내가 봉사할 시간은 이른시간이라 동생들의 부모님의 모습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어린나이에 부모님로 부터 떨어져있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닌 데, 떼쓰고 울거나, 꿍하는 아이들은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원봉사자 방문기록을 보니 전남대,광주대,호남대를 비롯한 많은 봉사자가 다녀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내 명단은 거의 끝자락에 표기되어있었다.
날이 갈수록 청소하는 범위는 점점 넓어졌고, 더 과한 일도 하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신애원의 아이들모습을 보니 앉고 싶은 마음도 접고,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집에 올 때마다 피곤해 녹초가 되고 말지만, 청소하는 순간에는 동생들을 보고, 집에 와서는 하루종일 병원에서 몇 년간 간호해주셨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특히 우리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난 집이 서울,광주에 1개씩있다. 그러기에 서울에 계시는 어머니 생각이 더 나게 되었고,'고작 몇 시간 청소봉사하고 지치면 되나?'하는 생각이 들어 피곤함을 한번 누르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곤 했다.
고등학교 때 야간자율학습 한다고 도시락을 싸주시고, 학교 갔을 때, 감쪽같이 깔끔히 방을 청소하시고, 일하시러 가셨던 어머니의 사랑을 대학생이 되서야, 신애원에서 진정성으로 느껴지게 되었던 것 같다.내가 이 곳에서 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결국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아들을 보는 시선과 별 다름이 없을 것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동생들을 보면서, 청소를 하다 답답해 창문을 열 때마다 어머니 생각을 하곤 했다.예민하고 반항적이였던 고등학교 시절과 달리,특히 신애원을 다닌 뒤부터 서울에 올라갈 때마다 무언가 더 해드리고 싶은 올바른 자식의 마음이 커지고 있다.
비록 주로 노인분들을 대상으로 봉사하는 재가 복지나 복지관보다 아동복지 시설은 적어 적응하기 힘들 줄 알았는데,이제는 다른 보육시설에 가도 봉사를 잘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친구중에 나와 같은 질병으로 휠체어를 타고 하니는 동갑내기 친구는 봉사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인데, 내가 그 몫까지 덤덤히 해내고 싶었다.그래서 매일 갈 때마다 더 웃으려하고,열심히 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 또한 신애원의 아이들과 같이 웃음을 찾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청소봉사가 그냥 쓸고 닦고 끝이라고 생각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겐 서울에 계시는 어머니의 그동안 사랑을 느껴주고, 항상 웃음을 잃지않는 친구들을 보며 긍정적인 사고로 발판을 잡아주는 귀중한 시간이였다.
힘이 닿을 때까지 봉사를 하고 싶고, 내 장래인 월드비젼 팀장이라는 직업을 통해, 미래의 여기 친구들과 가나지역의 동생들을 엮어 함께 데리고 봉사를 다니고 싶다.
봉사를 하며, 신애원에 도착하는 시간은 매번 조금 달랐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은 하나고, 절대 변하지 않았다.항상 긍정적인 아이들을 보면서, 형/오빠인 내가 가끔은 더 배울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 이제껏,굉장히 보람되는 시간이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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